
긴 백수 생활, 그리고 지난 2년간 회사에서 5분 거리에 자취하며 출퇴근 지옥과 먼 생활을 했다.
더군다나 작년에는 본격적인 코시국 시즌이 시작되며 재택 근무하는 날이 많아지면서
출퇴근으로 소모하는 에너지가 없다시피 했다. (더위와 추위도 모르고 살았다)
대중교통에 몸을 싣기만 하면 알아서 이동하니 크게 힘든 일이 아닌 것 같고...
5시간 근무라고 해도 5시간 내내 쭉 서 있는 게 아닌데, 안 쓰던 머리와 몸을 쓰니 체력 소진이 장난 아니다.
(30년 가까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출퇴근 지옥철에 몸을 싣고 한 회사를 계속 다니신 아버지 존경합니다...)
월요일에 첫 출근을 해서 하루 5시간씩 5일, 첫 주를 보냈다.
당연히 처음 와서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에게 뭐라 할 사람은 없지만,
일단 같이 일할 점장님, 슈퍼바이저, 파트너 모두 좋은 사람들 같다.
길지 않은 사회생활을 경험하는 동안 '병X력 보존의 법칙'은 항상 유지가 되었는데,
아직 일주일 밖에 안 해봤지만 우리 매장은 해당 사항이 없는 것 같다. (그렇다면 난가?)
처음 한두 달은 새로 뇌에 때려 박아야 하는 양이 너무 많아서 힘든데,
그거 못 외우고, 한번 알려줬는데도 못하면 쿠사리 주는 매장도 여럿 있는 모양이다.
가뜩이나 나이 먹고 이 일을 시작했는데,
나보다 어린 사람들한테 그런 소리 듣기 싫어서 내 나름대로 신경 써서 배우고 있다.
그럼에도 잘하고 있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Day_1
원래는 전국의 신입 파트너들이 본사에 모여서 하루였나 이틀 동안(?) 교육을 받는다고 한다.
하지만 시국이 시국이니만큼 바로 근무하게 될 매장으로 출근해서 온라인으로 교육이 진행되고 있다.
출근하자마자 각종 서류 작성과 함께 파트너로 근무하는 데에 필요한 각종 애플리케이션을 다운받았다.

많아도 너무 많다...
한 번에 다 머리속에 때려 박으려고 하기보다는 심심할 때 이것저것 만져보다 보면서 익히고 있다.
아직은 쓸.놈.쓸
다른 파트너들 다 열심히 근무하는 동안 혼자 테이블에 앉아서 앱으로 교육을 들었다.
당연히 첫 출근이라 아는 거 1도 없으니 도움은 기대도 안 하고,
할 줄 아는 것도 없는데 옆에서 기웃거리고 있으면 방해되니까 차라리 없는 편이 편한 거 잘 알고 있는데
혼자 앉아서 교육 듣고 있으니 괜히 놀고 있는 느낌이 들어서 민망했다.
교육 듣다가 CS(Customer Support) 포지션에 관해 설명을 듣고 간단한 몇 가지 실습을 해봤다.
가장 간단한, 기본이면서도 중요한 포지션이다.

파트너 복지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이 근무하는 날 음료 2잔 제공이다.
평소에 카페는 거의 스벅만 이용하는 편이라 한잔만 해도 땡큐인데 무려 2잔이다.
음료 판매와 제조, 설명을 해야 하는 입장이니 다 마셔봐야 해서 앞으로 열심히 하나씩 마셔봐야겠다.
단 것을 싫어해서 마음 같아서는 콜드브루만 주야장천 마시고 싶지만...ㅎㅎ
첫날은 돌체 콜드브루와 콜드브루를 마셨다.
카페는 처음이지만, 머기업 영화관 알바를 오래 해서 그런지 아주 똑같지는 않아도 비슷한 부분이 많았다.
오래전에 했기 때문에 이젠 몸도 기억을 못 하고 있지만 그래도 아주 낯설진 않아서 조금은 다행이라고 느꼈다.
점심 피크가 끝나고 한가한 시간에 출근해서 다행히도 퇴근 시간이 퇴근 지옥과 겹치지 않았다.
특별히 한 것도 없는 첫날이었는데, 버스에서 자리 잡고 책 읽으려고 펴자마자 곯아떨어졌다.
Day_2
첫날과 같이 교육 또 교육.
바닥 마감하는 것과 몇 가지 기물 마감하는 방법, 저녁 시간 되기 전에 쓰레기 처리하는 것을 배웠다.
사실상 크게 머리 쓸 일도 아닌데 한 번에 너무 많은 정보가 머릿속에 들어오니 혼란스럽다.

지인들이 스벅 자허블(자몽 허니 블랙 티)이 진리라고 강추하길래 마셔봤다.
스벅 골드회원 3년 차지만, 이 모든 게 거의 콜드브루로만 쌓아 올린 거라 사실상 스벅에 어떤 메뉴가 있는지도 잘 몰랐다.
한두 명이 추천한 게 아니라 기대하고 마셨는데, 음... 내 입맛엔 잘 안 맞았다.
임직원은 음료, 푸드 30% 할인이 가능하다.
언제부턴가 1일 2식이 디폴트가 되었는데 점심을 먹고 출근해서 배가 안 고팠지만 휴식 시간에 푸드를 할인받아 먹어보았다.
아직 특별히 할 줄 아는 것도, 하는 게 없는 신생아 수준이라 힘든 일은 별로 없었다.
Day_3
점심 피크 전의 오전에 출근했다.
취직해서 퇴사를 앞둔 파트너분과 처음 인사를 나누고 부재료 만드는 교육을 받았다.
이 역시 특별히 과정 자체는 어려운 것이 없었는데, 비율과 내부품질 기한을 외워야 하는 것이 골치 아프다.
우리나라는 대기업을 악마시하는 아주 나쁜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는데,
비록 알바 수준이긴 해도 서비스직에서 일해보면 대기업만큼 위생 칼같이 신경 쓰고 철저한 곳이 없다고 생각한다.
개인이 운영하는 곳도 물론 신경을 많이 쓰겠지만,
우리나라 특유의 영 좋지 못한 분위기로 인해 조금이라도 책잡히지 않으려고 대기업은 정말 신경을 많이 쓴다.
(그만큼 외울 게 많음....ㅎ)
대부분의 카페가 그렇겠지만 우리 매장은 오피스 상권이라 12시부터 1시간동안 바짝 바쁘다.
내심 한창 바쁠 때 걸리적 거릴까봐 걱정했는데, 감사하게도 뒤에 들어가서 교육을 들으라고 하셨다.
퇴근하고 외주 작업 중인 영상을 후딱 마무리 짓고 내부품질기한을 조금씩 외워야겠다 생각했는데,
이것 저것하다가 정신 팔려서 인쇄물을 놓고 왔다.
우리 매장 파트너분들 다 좋은 분들이라 설마 그런 생각하진 않겠지 싶지만,
종이 놓고 온거 발견하고 괜히 안좋게 볼까봐 걱정이 앞섰다.
Day_4
어김없이 시간 쪼개서 앱으로 교육을 받았다.POS도 짧게 교육을 받았는데, 머릿속이 하얘졌다.
영화관 알바했을 때 처음엔 어려웠어도 메뉴가 다양하지 않아서 조금 버벅거리긴 했어도 금방 익숙해졌는데,
스벅은 메뉴도 많고 퍼스널 옵션이 너무도 다양해서 이거 언제 적응할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서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 없으니 부담갖지 말자', '처음에 못하는 게 당연하니 다들 이해해주실거야',
'조금 속도가 느려도 실수만 하지 말자', '할 수 있다, 자신감을 갖자!'
당장 투입될 것도 아니라 옆에서 다른 파트너가 주문받는거 쉐도잉으로 연습해봤는데,
마인드 컨트롤을 열심히 해보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아 자신감이 쭉쭉 떨어졌다.
수도권 4단계 격상으로 인해 카페 종사자들은 코로나 검사 의무로 받고 백신 접종도 해야한다고 한다.
화이자나 모더나 주사바늘이 내 팔뚝에 꽂히기 전까진 아무 것도 맞지 않겠다고 다짐했다가
어떻게든 빨리 해외로 뜰 생각에 얀센을 맞았었는데, 잠시 그 선택을 후회하기도 했다.
코로나 검사 받는 것 때문에 1시간 일찍 퇴근하고 그 시간도 근무 시간으로 인정해준다고 했다.
동네 보건소로 가서 처음으로 코로나 검사를 받아봤는데, 콧속으로 면봉(?)이 쑥 들어올 때 기분이 참 X같았다.
Day_5
3일 차에 짧게 배웠던 부재료 만드는 것을 다시 해봤다.
처음에 기억이 잘 나지 않아서 괜히 눈치 보였다.
난 가만히 있는 걸 싫어하는 편이어서 영화관 알바했을 때도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잠시도 쉬지 않고 일거리를 찾아서 했더니 나름대로 금방 일 적응도 하고 칭찬을 많이 받았었다.
여기에서도 나중에는 당연히 그렇게 되겠지만, 지금은 할 줄 아는 게 없어서 너무 답답하고 눈치보인다.
계속 머리로는 처음에는 다 그런거니 부담갖지 말자고 주입을 하지만,
아직은 1인분도 제대로 할 수 없는 내 자신이 너무 초라하게 느껴진다.

단 거 정말 싫어하는데, 어쩔 수 없이 메뉴도 익혀야 하고 맛을 알아야 하니
그 유명한 '자바 칩 프라푸치노'를 부탁해서 마셔봤다.
역시 예상대로 너무 달아서 굳이 다시는 찾아서 마실 일은 없을 것 같다.
마치 네스퀵이나 제티를 진하게 타 놓은 듯한 맛이었고,
입에서 초코칩이 씹히는데 이에 뭐 달라붙는 거 싫어해서 상당히 거슬렸다.
30분 휴식 후에는 또 앱으로 교육을 들었고, 그 후에 POS 교육을 받았다.
한가한 시간이라 점장님께서 직접 주문 한번 받아보라고 하셨다.
막힐 때는 옆에서 다른 분이 포스팅 해줄 테니 부담 갖지 말고 해보라 하셨는데,
아직 메뉴 위치와 이름이 외워지지 않아서 포스팅에 집중하면 주문하시는 게 안들리고...
(마스크 때문에 더 안들림ㅠ)
주문하는 거에 집중하면 포스팅이 안되면서 머릿속이 하얘진다.
고객이 주문 하시는 거 못 찾고 있을 때 옆에서 슉슉슉 눌러주시는데,
멀쩡한 사람 눈으로도 안 보이는데 어찌 그리 빨리하시는지... 내 정신을 뒤집어 놓으셨다!
몇 차례 응대해보다 보니 계속 마인드 컨트롤을 해도 쉽사리 하지 못할 것 같은 걱정에 자신감이 떨어져 갔다.
그걸 캐치하고 용기를 주려고 하신 말씀인지는 몰라도 점장님께서는 처음치고 정말 잘했다고 칭찬해주셨다.
매일 하나둘씩 습득해가는 햇병아리인 나를 볼 때마다 뿌듯하다고 하셨는데,
그게 잘 이어져서 1.5인분은 고사하고 1인분이라도 제대로 해내고 싶다.
교육해준 파트너도 처음치고 충분히 잘하고 있으니 좀만 자신 있게 말해보라고 격려해주셨다.
가족들도 내가 말하는 걸 답답해할 정도로 혼자 웅얼거리는 목소리라 크게 말하려고 노력해도
자신감이 떨어지니 쉽게 되지 않는다ㅠ
그리고 사회성이 부족한 탓에 사람 간에 대화 자체를 부담스러워하는 편이기도 하다.
가족과도 대화를 잘 안 하는 편인데 가뜩이나 코로나로 인해 사람 자체를 만나는 일이 드물어져서
입 밖으로 말을 꺼내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게 느껴져서 너무 걱정이다.
이러면서 세계 일주를 하면서 유튜브를 하겠다 생각을 했으니...ㅠ
결국엔 내 마음가짐과 시간이 해결해 줄 문제라 생각한다.
패기 넘치던... 갓 전역해서 영화관 알바 시작했을 때만 해도 이런 걱정은 없었는데
몇 년 사이에 내가 참 많이 변했다고 느끼게 됐다.
앞으로 더 배워야 할 것 천지인데, 그저 실수만 하지 말고 나이 먹고 그것도 못 하냔 소리만 안 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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